NEW PURSUIT OF SCHRÖDINGER’S 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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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BALL | PROSPECT (UK) | 09.21.2011
양자역학이 나온 지 백 년이 넘었으나 우리는 여전히 양자역학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런데, 양자역학의 토대를 마련한 사람들이 카펫 밑으로 쓸어서 덮어버리고 다루지 않았던 문제들을 연구하는 데에 요새 일단의 과학자들이 새삼스럽게 신명을 내고 있다. 원자의 켜에서의 물질은 어째서 일상의 켜에서의 물질과 아예 다른 법칙을 따르고 있는지를 밝히는 데 이 과학자들은 양자역학의 아버지들이 살던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달된 실험연구기법을 써서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테스트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기실 물질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기나 하는가, 하는 철학적 문제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1900년 독일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전자파동의 한 형태인 빛이 아주 작은, 나뉠 수 없는 에너지의 패킷packets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포톤’photons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입자를 플랑크는 빛의 “퀀타”quanta라고 했다. 오 년 후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이 ‘퀀텀’(‘퀀타’의 단수형)가설이, 빛이 전자를 금속에서 튕겨 내는 것 (광전효과)을 설명한다는 것을 증명했고, 이것으로 (상대성원리가 아니라) 아인슈타인은 노벨상을 받았다.
에너지는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다는, 얼핏 볼 때에는 무해한 듯한 아이디어에는 기괴한 함의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퀀텀이론의 선구자들은 곧 알아차렸다. 물체는 한번에 여러 군데 있을 수 있다. 입자는 파동처럼 행동하고 파동은 입자처럼 행동한다. 하나의 이벤트를 ‘목격’하는 행위는 그 이벤트 자체를 바꾼다. 퀀텀의 세계는 끊임없이 다수의 우주’들’로 가지를 뻗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함의를 퀀텀이론은 간직하고 있었다.
이러한 패러독스를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면 양자역학은 ‘유용’하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양자역학에 대해 갖고 있는 태도는 코넬의 물리학자인 데이빗 멀민이 한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입 닥치고 계산이나 해!” 과학자들은 양자역학을 써서 합금의 강도에서부터 분자의 모양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것들을 계산한다. 전자기기의 극소화나 MRI 이미징, 또는 태양열전지 등속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도 양자이론의 응용이다. 양자역학이 품고 있는 기괴한 함의에 대해서는 입 닥치고서 그저 계산이나 하면 양자역학은 유용한 셈이다.
양자역학은 모든 과학 분야에서 가장 믿음직한 이론 가운데 하나이다.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예측하는 데에 양자역학은 소수점 이하 여덟자리까지 정확하게 셈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 이론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곧 이 이론이 물리적 우주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의 문제는, 양자역학의 선구자들 (닐즈 보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에르윈 슈뢰딩거 등등)은 풀지 못했다. 유명한 얘기지만, 아인슈타인은 퀀텀이론이 너무도 많은 것들을 그저 ‘우연’(chance)에 맡기는 것, 세상이 배열된 방식의 확률만을 얘기할 뿐, 물질의 근본에 대해서는 무엇 하나 확고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을 극히 못마땅해했다.
대개의 물리학자들은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의 ‘코펜하겐 해석’을 받아들인다. 퀀텀이론이 묘사하는 것 너머에 어떤 근본적 ‘실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확률보다 더욱 근본적이고 확정적인 ‘그 무엇’(Etwas)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정식의 수면 밑에 도사리고 있는, ‘깊은 실상’에 대한 기대를 저버릴 필요가 있다는 뜻에서 보어는 “상보성”(complementarity)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었다. 어떤 퀀텀물체를 재면, 재는 사람은 그 퀀텀물체를 특정한 ‘상태’에서 보게 된다. 재는 사람이 그 물체를 보기 전에 그 물체가 그 상태에 있었는가, 따위의 물음은 무의미하다. 관찰자가 “모르는” 게 아니라, 그러한 물음 자체에는 물리적 의미가 없다는 소리다. 마찬가지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퀀텀입자의 위치에 대해 우리 ‘앎’의 한계를 말하는 게 아니라, ‘위치’(position)라는 개념에 테두리를 정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생각을 아인슈타인은 ‘생각실험’ 하나를 제시함으로써 대거리했다. 두 개의 퀀텀입자를 상호의존적인 상태에 있도록 (따라서 하나의 입자가 한쪽 방향으로 맞추어지면 다른 입자는 반대쪽 방향으로 맞추어지도록) 배열하고서, 이 두 입자를 수억 광년 간격으로 떨어뜨려 놓는다. 그런 다음 한쪽 입자의 상태를 잰다. 이때 양자이론을 따르면, 한쪽 입자를 재는 행위는 동시에 다른 쪽 입자의 상태를 규정해 버린다. 다시 말하지만, 재기 전에는 입자의 상태를 알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재기 전에는 입자의 상태 자체가 규정되지 않는다는 게 양자이론이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렇다면 ‘측정’(measurement)의 효과는 순간적으로, 빛보다 빠르게 다른 쪽 입자로 전송된다는 소리가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말이 안 된다. 이게 아인슈타인이 한 주장의 얼개였다.
그런데, 이게 말이 안 되는 게 아니다. 실험을 통해서 지금은 확고히 다져진 것이, 거리가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이처럼 순간적으로 전송되는 것, 곧 ‘얽힘’(entanglement)이야말로 양자역학의 줏대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얽힘’은 그저 우원迂遠한, 실용성이라고는 한 점 없는 개념이 아니다. 퀀텀암호학에서도 이 ‘얽힘’이 줏대가 되어서, 암호는 ‘얽혀진 퀀텀 입자’로 코딩되고, 그럼으로써 전송도중에 들키지 않고서 가로채거나 몰래 읽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얽힘’은 또한 퀀텀컴퓨팅에서도 줏대 노릇을 한다. 퀀텀입자가 여러 상태에 동시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용해서 ‘큰’ 정말 ‘큰’ 계산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게 퀀텀컴퓨팅이다. 퀀텀암호학이나 퀀텀컴퓨팅과 같은 테크놀로지가 아직은 발아단계에 있으나, 이미 상업적인 응용의 기미가 여러 군데에서 보이고 있다. […]
“인포메이션과 물리적 실상 사이의 관계에 관한 담론이 요새 흥미를 끌고 있는 까닭은 그러한 물음들에는 실용적 함의가 담겨있기 때문이다.”고 로스 알라모스의 퀀텀물리학자인 워지치에크 주렉은 말한다.
[…]
COMMENT
지구가 판판한 게 아니라 둥글다는 것을 사람들은 비교적 별 어려움 없이 받아들였다. “뭔 소리야? 우리 반대편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은 떨어지지 않고 땅에 발을 붙이고 있다는 얘기야?” 하는 사람들한테 쇠공과 자석을 들고서, “자석을 여기에 붙이든 저기에 붙이든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처럼 어떤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서 여기 살든 저기 살든 다 땅에 발 붙이고 살 수 있거든.” 하고 설명해주면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리 원양으로 나가도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고 출발한 자리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확신이 서자 한 바퀴 돌아 볼까, 하는 놈이 나오게 마련이고 그런 놈 덕에 지구가 둥글다는 게 증명되지만, 만약 둥근 지구 사진이 없었다면 여전히 지구가 판판하다고 우기는 인간은 있었을 게다. (그것도 조작이라면서, 그럴듯한 음모이론을 들먹이면서 여전히 지구가 판판하다고 주장하는 놈이 있을 수도).
사람들이 정말 믿지 못했던 것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의 증명은 몸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순전히 머리로 해야 했고 그것도 고급수학기법이 나온 다음에야 가능했을뿐더러 그 고급수학기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 인구의 극소수에 불과한 까닭이었다. 더군다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든 자전을 하든 공전을 하든 별 개지1랄을 떨든, 일상은 어제처럼 오늘도 던적스러웠다. (지구가 둥글어서 신대륙이 발견되는 등 하면서 인류의 역사가 급변하게 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처럼 실용적인 면이라고는 일절 없는 ‘이론’은 그저 종교에 대거리하는 것밖에 안 되었다. 이런 쓸데없는 ‘이론’에 매달리면서 일생을 낭비한 인간들은 그저 밥버리지일 따름이었다.
“상대성 원리가 뭔 개소리래?” “그걸로 원자탄 만들었다잖아.” 기실E=mc2과 원자탄 사이에 관련은 있지만 아주 미묘한 켜에서 관련된 것이지 누구나 알 수 있는, 또렷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물질과 에너지의 변환, 그리고 c2를 통한 변환증폭 덕에 원자탄이 가능하다는 것도 물리학자들한테 물어보면 틀린 소리라고 한다.) 그래도 ‘원자탄’이 있으니까 ‘상대성 원리’도 받아들인다. 트랜지스터 같은 고체상태 테크놀로지가 애초 나오지 않았다면 양자역학도 세간에서는 밥버러지들의 지적 유희에 불과했을 터이다. 대개의 사람들한테 과학은 테크놀로지일 따름이다.
과학자라는 사람들조차도, 교과서에서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이는 것일 뿐 논리의 결을 따라서 근본을 톺는 사람은 드물다. 과학 (크게는 학문)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 (지적 게으름)과 어긋날 뿐 아니라 그러한 지적 게으름을 극복한다 하더라도 인구의 극소수만 우주의 근본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손으로 만져지는 게 없으면 ‘쓸 데 없는’ 것일 따름이다. 졸부 나라에서는 순수과학이 맥을 못 쓰는 까닭도, 이러한 ‘실용성’이 없는 탓인데, 졸부처럼 “그거 돈 되냐?”는 물음이 모든 것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문화에서는 순수과학 따위가 발 붙일 곳은 협소하다.
퀀텀컴퓨팅이 상용화되어서 bit의 세상이 qbit의 세상으로 변하면 (내가 평균수명을 산다면 내가 죽기 전에 볼 수 있지 싶다.) 지금과는 아예 다른 세상이 될 만큼 양자역학의 ‘실용적’ 힘은 불가량하지만, 그러한 실용적 힘보다 더욱 센 힘이 양자역학이 제시하는 근본적 물음에 담겨있다. ‘측량’이라는 행위가 확률(probabilities)을 확정(certainties)으로 바꾼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나? 이것은 결국 코즈몰로지의 문제이고 그러므로 존재의 근본에 관한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설령 관심한다고 해도, 아무리 천재라도 잠정적 해답밖에 못 낼 테지만 ─종국에는 인류가 사라져서 아무도 그 해답을 못 내고 끝날 공산이 크지만─ 언젠가 말했듯이 (윤리의 문제를 말할 때), 답을 내는 게 아니라 문제를 생각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 그리고 죽을 자리에서 생각할, 삶에서 아주 드문 것 가운데 하나가 이러한 문제가 아닐는지.
(위의 사진은 1927년,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신간회가 이월에 창립되어 한참 커가던 그해 시월에 살바이 ─ 이것은 지명이 아니라 브뤼셀에 있는 살바이 물리화학연구소를 뜻한다 ─에서 열린 입자물리학 컨퍼런스에서 찍힌, 나름대로 유명한 사진이다. 저 사람들 가운데 열 여덟 명이 노벨상 수상자이다. ─ 물론 지금처럼 발에 채이는 게 노벨상 수상자여서 대개는 ‘듣보잡’인 때가 아니라 노벨상 수상자의 수가 극소수였던 때이다. 유일한 여자, 앞줄 왼쪽에서 셋째 자리에 앉아 있는, 얼핏 남자 같은 사람이 큐리 부인이고, 그녀 오른팔 쪽에 앉아 있는 사람이 막스 플랑크 왼팔 쪽에 앉아 있는 사람이 헨드릭 로렌츠, 그리고 그 옆은 말할 나위 없이 아인슈타인이다. 하이젠베르크는 맨 뒷줄 오른쪽에서 셋째 자리에 서있는 사람이고, 같은 줄 여섯째 자리에 서있는 사람이 쉬뢰딩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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