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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AH LEHRER | PROUST WAS A NEUROSCIENTIST
과학을 통해서 ‘자유’ (freedom)를 눈으로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과학이 ‘의지’ (the will)를 찾고 싶다면 어디에서 그것을 찾아야 할 것인가? 조지 엘리옷George Eliot은 스스로를 바꿀 수 있는 우리 마음(mind)의 능력이야말로 자유의 원천이라고 믿었다. 그녀의 대표작인 「미들마치Middlemarch」의 주인공 도로시아Dorothea (엘리옷 자신처럼 도로시아도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나간다.)는 사람의 마음이 “대리석에 새겨진 것처럼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것, 늘 바뀌는 것”이라는 데에서 위안을 얻는다. 우리의 영혼은 이 덕에 “구원받고 치유될 수” 있으므로 도로시아는 이 “마음의 가변성”이라는 아이디어에서 희망을 본다. 조지 엘리옷은 ‘바뀜의 가능성’을 받아들일 만큼 담대한 사람들을 찬양했다. (이 점에서는 제인 오스틴과 같았다.) 엘리자베스 베넷Elizabeth Bennet(「오만과 편견」의 주인공)이 스스로의 편견에서 벗어나듯이 도로시아도 젊은 시절 저지른 잘못을 극복해 낸다. 엘리옷이 적고 있듯, “우리는 과정이고 천천히 펼쳐지는 천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조지 엘리옷이 믿었던 ‘뇌의 가변성’을 생물학은 믿지 않았었다. 다윈 이후 라플라스를 비롯한 실증주의자들이 우리의 환경을 감옥으로 여겼다면, 결정주의자 (determinists)들은 새로운 ‘광고 카피’를 들고 나왔다. 곧, 우리의 뇌는 유전적으로 지배되는 로봇일 따름이다, 라는 것이었다. 뉴런neuron 사이의 연결은 우리가 어찌해 볼 수 없는 힘에 의해 조종된다는 것이다. 토마스 헉슬리가 선언했듯이, “우리는 그저 의식 있는 로봇일 따름이다.” 는 것이다.
이 테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람은 태어날 때 뉴런의 수가 고정된다고 믿은 과학계의 신앙이다. 다른 부분 같지 않고 우리 뇌의 세포는 분열하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태어나서 영아기가 지나면 뇌는 그것으로 끝이라는 것이다. 우리 마음의 운명은 정해진다는 소리다. 20세기 내내 이 믿음은 뉴로사이어스의 밑바탕을 이룬 근본원리 가운데 하나였다.
이 아이디어를 가장 설득력 있게 내세운 사람은 예일대학의 파스코 라키치 Pasko Rakic 교수였다. 1980년대 초반, 뉴런은 세포분열을 하지 않는다는 아이디어가 영장류를 대상으로는 한번도 실험되지 않은 것이라는 데에, 그러므로 이 아이디어는 그저 ‘도그마’일 따름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친 라키치 교수는 실험에 착수한다. 열 두 마리의 붉은털원숭이한테 방사성 티미딘thymidine을 주입하고 뉴런의 발달과정을 살펴보았다. 새로운 뉴런이 생성되는가,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새 뉴런은 생기지 않았다. “붉은털원숭이의 뉴런은 모두 임신기와 생후 몇 개월에 생겨서 새로운 뉴런은 그 뒤에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이 라키치 교수가 1985년 발표한 「영장류에서 ‘뉴런생성’ (neurogenesis)의 한계」라는 논문에서 내린 결론이었다.
라키치 교수 자신도 자신이 내린 결론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였으나, 그럼에도 그가 이 논문에서 ‘뇌의 불가변성’이라는 도그마를 설파한 논리는 탄탄했고 설득력이 강했다. 더 나아가서 라키치 교수는 어째서 뉴런이 세포분열을 하지 않는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진화 이론마저 세웠다. 진화단계에서 영장류는 새로운 뉴런을 생성할 수 있는 능력을 포기하고서 이미 생성된 뉴런 사이의 연결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키워왔다는 것이 그가 들고 나온 이론의 얼개였다. 심지어 그는 영장류가 보이는 “사회적 및 인지적” 행동에 ‘뉴런생성력’이 없는 것은 종요롭다고까지 주장했다.
이미 뉴로사이언스계에서 널리 믿어지고 있던 아이디어를 설득력 있게 확인해 준 라키치 교수의 논문은 이 주제에 관해서 더 이상 왈가왈부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라키치 교수의 실험을 검증하려는 학자마저 없었다.
그러나 과학적 방법의 천재성은 어떠한 것도 영원한 해법으로서 받아들이지 않는 데에 있다. 회의주의는 과학의 용해제溶解劑이다. 어떤 이론이고 완벽한 것은 없다. 과학적 ‘팩트’가 유용한 까닭은 바로 이러한 ‘한시성’에 있다. 새로운 관찰, 좀더 솔직한 관찰은 기존의 이론을 바꾼다. 그리고 이 덕에 라키치 교수의 ‘뇌 불가변성’ 이론도 바뀔 수 있었다. 카를 포퍼의 용어를 빌리자면 라키치 교수가 주창한 명제는 falsify되었다.
1989년 록커펠러 대학의 브루스 맥크웬 랩lab에서 박사후과정을 밟고 있던 엘리자베스 굴드는 쥐 뇌에 스트레스 호르몬이 어떤 작용을 하는가를 연구하고 있었다. 만성 스트레스는 뉴런에 치명적이었고 굴드는 ‘히포캠퍼스hippocampus’ 뉴런의 상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런데 뇌의 쇠퇴를 연구해 나가다가 굴드는 우연히 기적적인 일에 맞닥뜨리게 된다. 뇌가 스스로 치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어노말리anomaly‘에 곤혹스러워진 굴드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자신의 실험에서 무엇인가 기초적인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여겼다. 뉴런은 세포분열을 하지 않는데 이게 무슨? 하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누구나 아는 ‘팩트’였다. 그러나 먼지가 잔뜩 쌓인 27년 전 과학저널에서 굴드는 미약한 실마리를 발견한다. 1962년 MIT의 조세프 올트만은 다 자란 쥐와 고양이, ‘기니피그’에서 새로운 뉴런이 생성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나중에 라키치 교수가 행한 방법과 동일한 실험을 통해서 얻은 결론이었지만 올트만의 주장은 깨끗이 무시당했었다. 무시당했을 뿐 아니라 조롱 받았다.
그 탓에 ‘뉴런생성’이라는 분야는 생겨나자마자 없어진 셈이었다. 그 십 년 뒤, 뉴멕시코 대학의 마이클 캐플란은 전자현미경을 써서 뉴런이 새로운 뉴런을 생성하는 이미지를 포착했다. 포유류의 뇌에는 이러한 새 뉴런이 잔뜩 있다는 것을 캐플란은 발견했지만, 사진으로 찍은 것마저도 도그마를 부수기에는 한참 모자랐다. 올트만처럼 캐플란도 그 뒤 오랫동안 과학계의 조롱과 무시를 당하면서 자신의 연구를 포기해 버렸다.
올트만과 캐플란의 논문을 읽어나가면서 굴드는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과학계가 ‘팩트’를 무시한 것일 따름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그리고 마침내 굴드는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발견한다. 마침 자신과 함께 록커펠러에 있던 페르난도 노트봄이 쓴 논문이었다. 새의 뇌에 대한 연구에서 노트봄은 새가 지저귀는 데에는 ‘뉴런생성’이 필요조건이라는 것을 밝혔다. 복잡한 멜로디를 노래하는 데에 수컷 새는 새로이 생성된 뉴런이 꼭 필요했다. 기실 새의 뇌에서 노래 센터’를 이루는 뉴런 가운데 1%가 매일 새로 생겨났다.
“당시 이것은 급진적 아이디어였다. 뇌는 고정된 것으로 여겨졌다. 뇌 발달이 생후 얼마 안 되어서 끝나면 그것이 끝인 것으로 믿어졌다. 운명은 결정된 셈이었다.”고 노트봄은 회상한다. 노트봄이 이 도그마에 균열을 낸 것은, 새를 새장에 가두고서 관찰한 것이 아니라 자연 ‘해비타트habitat‘에서 연구한 덕분이었다. 새장 속에 넣고서 새의 자연스런 ‘사회적 문맥’에서 벗어난 상태에서 새를 관찰하였다면 그토록 많은 새 뉴런이 나온다는 것을 관찰할 수 없었을 터였다. 새한테 가해지는 스트레스가 너무 강해서 새는 자주 노래하지 않고, 따라서 새로이 생성되는 뉴런의 수가 너무 적어서 관찰이 불가능했을 터였다. 노트봄의 말마따나 “실험에서 자연을 앗아가면 실험에서 얻어지는 통찰은 죄다 생물학적 진공상태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생물학적 진공상태 ‘밖’에서 관찰한 덕에 뉴런생성을 발견할 수 있었던 셈이다. 적어도 새의 뇌에서 뉴런생성은 진화적 목적이 뚜렷했다.
노트봄의 연구와 데이터는 탄탄하고 우아했음에도 그의 연구결과는 과학계에서 언저리로 밀려났다. 포유류의 뇌를 연구하는 데에 ‘새다가리’는 쓸모 없는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새 뇌 속에서 벌어지는 뉴런생성은 진화단계에서의 예외로서 치부되었다.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토마스 쿤은 과학이 어떤 식으로 자신의 생각과 배치되는 생각을 배척하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과학자가 자연을 다른 관점에서 보는 법을 터득하기 전까지 새로운 ‘팩트’는 ‘과학적 팩트’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뉴런생성에 관한 증거들은 “정상적인 과학”에서는 체계적으로 배척되었다.
그러나 굴드는 마침내 점들을 연결해 내었다. 올트만이나 캐플란, 그리고 노트봄 모두 포유류의 뇌 속에서도 뉴런생성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를 탄탄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데에 그녀는 주목했다. 과학계에서는 무시하고 있던 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가지고 굴드는 애초의 연구를 포기하고서 뉴론생성에 관한 연구로 방향을 틀었다. 그 뒤 8년 동안 그녀는 지겨운 연구과정을 꿋꿋이 밟아나갔고 이러한 ‘막노동’에 가까운 연구는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더 이상 과학계는 뉴런생성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혹독한 박사후과정을 마치고서 굴드는 프린스턴 교수로 취임하고 그 이듬해부터 뉴런생성 이론의 분수령이 되는 연구논문들을 쉴 새 없이 발표한다. 그녀의 데이터는 라키치 교수의 이론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고 1998년 라키치 교수마저도 뉴런생성이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교과서는 다시 쓰여야 했다. 뇌는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굴드는 더 나아가서 뉴런생성의 양은 단순히 유전자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밝혔다. 스트레스는 새로 태어나는 뉴런의 양을 크게 줄이며 위계질서에서 밑줄에 있어도 (곧, 신분이 낮아도) 새 뉴런의 양은 크게 준다. 그러나 희망도 보였다. 스트레스가 남긴 상처는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마음은 구원받지 못하는 지경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뉴런생성력’은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되 말소되지는 않으며 숨을 쉬는 한, 우리 뇌 속의 중요한 부분들은 끊임없이 분열한다. 뇌는 대리석이 아니라 찰흙이다. 그리고 이 찰흙은 굳지 않는다.
‘자유’라는 개념은 여전히 추상적이되, 뉴런생성 개념은 우리가 진화를 멈추지 않도록 진화했다는 명제를 세포의 켜에서 뒷받침하는 구체적 증거이다. 조지 엘리옷의 생각은 옳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끊임없이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녀가 「미들마치」에서 적고 있듯이, “마음은 ‘아인산亞燐酸’(phosphorous)만큼이나 활발하다.” 매일 아침 우리는 조금 새로운 뇌를 갖고 하루를 시작하므로 이러한 ‘뉴런생성력’은 우리의 ‘바뀌는 능력’이 결코 어느 시점에서 멈추지 않음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쉴 새 없이 들끓고 있는 우리의 세포들에서, 속수무책일 만큼 강력한 우리 뇌의 가변성에서, 우리는 자유의 원천을 본다.
COMMENT
주말에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여러 군데 흥미로운 부분이 보이므로 앞으로 몇 번 포스트할까 싶은 마음이다. 코멘트는 차차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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