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앜합격이다 [400824] · MS 2012 · 쪽지

2012-02-23 02: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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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대군의 업적들..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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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세에 평양기생 봉지련을 궁궐로 데리고 와 놀다가 걸림. 태종의 명으로 봉지련은 관노가 됨

2.내관이 태종의 명으로 양녕이
기르던 매를 놓아주자, 내관에게 분풀이를 해 채찍으로 때려죽임

3.큰아버지 정종 임금의 애첩 초궁장을 뺏음

4.퇴직한
관리의 손녀가 이쁘다는 말을 듣고 그 관리의 집으로 찾아가 다짜고짜 겁탈

5.4번 사건으로 양녕은 이에 협력한 사람들을 모조리
불어버렸고 이귀수, 진포가 태종의 명으로 참형을 당함

6.죽은 관리의 장례식장에서 애첩을 뺏으려다 실패하자 망자의 형을
구타함

7.퇴직한 무인 곽성의 첩 어리를 강간하고 임신시킴(야사에는 딸을 낳고 자살했다고 나옴)

8.친동생 성녕대군이
죽었을때도 무리를 이끌고 사냥을 다님

9.폐세자 이후 어리가 자살했을때도 다른 여인과 놀면서 아무런 슬픈 기색이 없었다고


10.훗날 아들 서산군의 애첩을 뺏음

11.계유정난 직후 수양대군에게 동생 안평을 죽이라고
종용

12.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뺏고 사약을 내리라고 종용(여기에는 임영대군도 가세)


양녕대군은 용의눈물이나 각종 위인전에서 나오는 '동생을 위해 왕위를 양보한 위인'이 아닌 '실성한 왕세자'에 가까웠으리라 봅니다.
일단 폐세자 당하는 것이 태종한테 보낸 서찰이 주요 원인인데.
그 내용이 " 왜 아버지(태종)는 후궁들 거느리면서, 자기(양녕)가 계집질하는 것은 안 되냐는" 항의조의 편지였습니다.
그리고 이후(폐세자 된)의 양녕의 행동또한 싸이코 그대로의 모습이었으므로 왕위 '양보'보다는 진정한 '폐위'에 무게가 실리는 점이죠.
또한 효령대군도 중이되었다고는 하지만 세종(자식이 18남 3녀던가??)보다 자식이 많았다고 전해지니, 이 또한 정상적인 중이라고 볼 수는 없을 듯 합니다.

양녕이 결정적으로 폐를 끼친 것은 훗날 단종때인데.. 양녕이 수양을 꼬드겨 쿠테타를 일으키게 했다고 알려져 있지요.
심지어 그후 단종.안평대군,금성대군에게 사약을 내리는 것을 주청했다고 하네요.
학자들은 아마도 양녕이 충녕(세종)에게 왕위를 뺏긴 것에 대해 원한이 남아, 세종의 후손들이 서로 피를 보게 하는 상황을 연출하게 했다고도 하는데..
과연 뒤끝도 대마왕이시군요. 이분은 이렇게 패륜을 일삼으며 86세까지 장수하셨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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