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을 수, 없는 너.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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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누적으로 마주치게 된, 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시는.
나에게 나와 타인들을 바라보는 관점에 무력감과 경외감을 동시에 가지게 해주었다.
닿을 수 없는 너.
사람들 사이에 있는 섬.
옆에 누군가가 있어도 홀로 있는 것만 같은 외로움.
이러한,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없는 문장들은 나의 머릿속에서 윙윙 울린다.
인간들은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
하지만 타인은 무수하고 ‘나’는 항상 유일하다.
무수히 많은 <너>들은 결코 <나>가 될 수 없다.
너와 나의 관계 정립에 미숙한 우리들은
닿을 수 없는 너.들을 바라보는 서로서로의 섬이 되어버린다.
서로서로에게 섬이 되어버린 우리들,
우리들은 그 섬에 ‘도달’ 혹은 ‘침범’하고 싶어 한다.
선의로써든, 악의로써든. 하지만 투명한 유리벽을 주먹으로 쾅쾅 치듯,
깊은 수심의 바다 속에서 팔다리를 허우적허우적 거리듯.
우리에게 남은 ‘너’ 거울을 통해 본 ‘나’이듯,
고개를 갸웃 할 수는 있지만 무언가 모호한 존재들이다.
이러한 모호함의 기저에는, 에피소드라는 하나의 사건속의.
우연이라는 상대성에 있다고 본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무수한 선택을 한다.
오늘의 점심식사, 오늘 외출할 때 입을 코트같은 가벼운 선택부터,
사랑, 직업. 꿈 등의 무거운 선택까지.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본질적인 시작인, ‘태어남‘이라는 것을 선택하였는가?
우리가 시간 속에 존재하면서 하나하나의 사건마다
선택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탄생‘이라는 것을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다.
’나‘또한 선택하지 않았듯, ’너‘또한 예외는 없다.
이러한 역설이 너와 나의 관계정립에 모호함을 부여한다.
이러한 사건은 ’필연’이라는 단어보다는 ‘우연’이라는 단어에 조금 더 가까울 것이다.
우연이라 함은 보통 필연적이지 않은,
우리의 목적에 따라 선택한 사건들에 부가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고들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들의 시작이라는 것이 부가적인가?
나는 이러한 질문에 답할 능력이 없다.
하지만 우리네 삶의 과정 속에 미친 우연의 영향력을 생각해보자면,
그것들은 정말 부가적인 것인가? 흐르는 풍경 속에서 마주친 하나의 정보가 바꾼 나의 진로.
어린 시절의 감추어 두었던 기억들이 크고 나서 작은 일에 다시 상기되는 것.
또는 우연의 누적으로 마주친 그 혹은 그녀까지.
물론 가치관에 따라서는 이러한 경험들을 필연으로 부를 수도 있다.
나 또한 그러한 관점에 반기를 들 생각은 없다.
다시, 닿을 수 없는 너.
서로서로 섬이 되어 바라보아야 하는 <너>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나의 관점에서는, 너와 나의 관계는 우연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모호하다. 필연은 아니지만 우연의 거대함. 그것이 너와 나의 관계의 핵심이다.
거대한 우연 안에서 서로에게 영향력을 주고받지만, 필연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가 부족하기에 닿을 수가 없다.
물론 그러한 필연을 믿을 수도 있고 그러한 필연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수히 만날 수밖에 없는 타인들과의 관계는,
필연보다는 우연에 뿌리를 둔 관계들이 절대 다수 일수밖에 없다.
우리는 타인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주고받지만,
항상 의도대로 흐르진 않는다.
우리가 ‘공감’이라고 부르는 감정과 ‘멘토’부르는 존재 또한 한계가 있다.
우리가 동일한 주제의 고민을 한다 하자.
하지만 너와 내가 고민하는 원인과 해답에 도달하는 과정이 모조리 같을 수 있을까.
나에게 누군가가 그럴듯한 결론을 이야기해 주었을 때,
그 결론이 나의 고민과 본질적으로 부합한다고 확신 할 수 있을까.
또한 언어의 한계, 즉 같은 단어로 상황을 설명해도 그 언어가 의미는 바는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너와 나는 항상 섬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있다.
반대로, 만약 내가 너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면
<너>와 <나>의 경계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어떤 걸그룹 노래의 가사처럼 타인이 자신의 마음에 들게 나를 재조립할 수 있다면?
이러한 유치한 가사가 아니더라도, 선의건 악의건
타인이 나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면,
<나>의 본질이 흐려진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결론이 되어버린다.
다시, 닿을 수 없는 너. 너에게 닿을 수 없다는 것은
<나>만이 <나>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범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밀실, 스스로만이 주체가 되어 결정하고 행동해야 하는 분야.
닿을 수 없다는 것은 소위 말하는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는 편한 말로 귀결 될 수도 있다.
행동의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한다.
선택하지 않은 탄생과 부모와 주위 환경. 그 이후 살아가며 마주치는 무수한 우연 혹은 필연들.
그 결과 제2의 탄생을 한 <나>는 오롯이 나 하나다.
우리세상의 모든 다양성은 <닿을 수 없는 너>들로부터 출발한다.
다양한 그들의 삶, 그들은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서 조차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자신만의 삶을 작곡하더라.
어쩌면 소위 말하는 ‘성장’의 본질은 원하지 않은 우연을 대처하는,
아름다움의 법칙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삶의 창조자이다.
그러한 창조자들이 나에게 <필연>으로 닿지는 않았지만,
거대한 우연으로 나의 무의식의 한 페이지를 작성했을 것이다.
<저희는 그렇게 될 수가 없어요> 라던, 선택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 대응해야 하던 그들도.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무기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던 그들도.
각각의 사연과 사고과정을 지닌 나의 주변에서 맴도는 그들도.
직접적으로 접촉 할 수는 없지만 더블유의 세상에서라도 솔직해지고 진지해질 수 있는 그들도.
마네킹이어도 상관없을 풍경으로 스쳐지나가는 그들도.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박경철씨의 말처럼 ‘우연으로 점철된 삶의 결과로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그것이 내가 필연이라고 믿는 현재 모습이라면,
지금까지 내가 지나온 삶의 흔적들과 내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연 역시 하나하나가
모두 내 삶의 소중한 역사일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은 나의 무의식의 한 페이지 작가들이다.
혹은 당신은?
글을 읽는 <너>들 또한 이러한 사례들을 무수히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차창너머로 스쳐지나가거나 기억의 저편으로 미뤄두어서
나에게 싹틔우지 못한 하나의 우연으로 남았을 뿐이다.
이러한 무수히 많은 가능성의 우연에 싹을 틔우려면 오감이 시퍼렇게 살아 있어야한다.
항상 익숙한 과정 속에서 규격화된 삶을 살아가기 보단,
무수한 우연에 충실하여, 우연의 싹들에게 물을 주어 꽃을 피워야 한다.
그 물은 사색과 성찰 그리고 독서가 될 것이다.<
우연>이라는 씨앗과 <준비된 나>라는 영양제가 새로운 꽃을 피울 수 있다.
필연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가 결여된,
그러나 거대한 우연의 관계.
이것이 <너>와 <나> 사이의 본질이 아닐까.
그래서 <너>와 <나>의 관계는 항상 모호하기만 하다.
닿을 수는 없지만 항상 의지하며 살아갈 당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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