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의해 [449655] · 쪽지

2014-10-21 04: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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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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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수능을 본후 망했다는 것을 직감한 나는 곧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버스를 타고 김포공항에 갔다.



노을이 지는 전망대에서 오랜만에 보는 비행기의ㅇ이륙모습은 나에게 아무 생각도 들게 하지 않았다. 그냥 시간이 이대로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공항인데도.



도시락을 들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도 현실임이 체감이 되지 않았다.



부모님이 수고했다면서 아웃백에서 스테이크까지 사주셨지만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침대에 누웠는데 그냥 눈물이 났다. 이거밖에 안되는 나자신이 한심해서 미칠거 같았다.



다음날 학교에 오니 아이들의 희비가 엇갈린게 눈에 선했다. 평소에 나보고 영어 잘한다고 부럽다던애가 98점을 받아오고 10평에서 만점을 받아 의기양양했던 나는 83점을 받았다. 인생 참 정직하구나 싶었다.



그날부로 내 머릿속엔 재수라는 글자만이 맴돌았지만 한편으로는 수능이 끝났으니 이제 좀 쉬어야지라는 본능이 나를 지배했다. 그날 이후로 학교서 갔다오면 미친듯이 스타만 했다. 옛날엔 정말 재미없었는데 하다보니 늘더라. 별 재미가 없었지만 그냥 했다. 그래도 공부는 하기 싫었기에



슬슬 수시 합격자 발표가 나오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이 성적이 상승세라며 최저만 맞추면 붙는다고 상향으로 넣어보라던 논술 수시는 볼것도 없이 모두 탈락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알바가 하고 싶어서 이력서를 미친듯이 아무데나ㄴ넣고 하루에 한곳씩 면접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내 우울한 감정이 얼굴로 드러나 보여서 였을까, 다시 연락이 오는곳은 없었다. 세상이 아무도 나를 받아들여주지 않는구나 싶었다.



슬슬 정시 원서를 쓸 시기가 되었다. 내가 현역때는 쳐다보지도 않던 적성검사를 하는 대학에 원서를 쓰게 될 날이 될줄은 몰랐다.

가군 경기대 나군 명지대 그리고 다군은 미친척하고 인하대에 넣었다.



아무런 감흥도 없이 경기대에 추합으로 붙었다. 친구들은 진심으로 축하해주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반수'라는 글자만이 맴돌았다.



반수를 시작하기 위해서 남아있던 용돈으로 서점에서 수능특강을 샀다. 계산을 끝내고 나가려는 찰나에 서점에 붙어있던 알바공고를 보았다. 바로 면접을 보고 다음주부터 출근하라는 문자를 받았다. 뭔가 올해는 잘 될거 같은 기분이었다.



오티를 가고 새터를 가고 학교에 등교하기 시작했다. 아무 감흥이 없었다. 그저 중학교서 고등학교 올라가듯이 그냥 가야 되니까 대학교에 온것 같았다. 학교에 별로 정도 붙여지지 않아 한동안은 아싸로 지냈다.



현역시절 `아주대서 반수해 연대공대 후기`를 보고 감명받은 터라 나도 알바를 하면서도 열심히 공부할수 있을줄 알았다. 하지만 대학생이라는 신분 속에서 수능공부를 하기는 쉬운일이 아니었다. 과제를 다 끝내고 나면 오늘은 수고했다는 생각에 수능공부를 점점 미뤘고 4월쯤 되니 내가 대학을 다니는건지 수능공부를 하는건지 알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4월말 중간고사가 시작할즈음에 오랜만에 친했던 분들과 만났다. 이것저것 이야기하다가 내 근황을 묻는 얘기가 나왔다. 나는 술김에 반수 얘기를 꺼냈다. 그랬더니 형은 그럴거면 차라리 자퇴를 하라고 지금 이러면 이도저도 안된다고 했다. 그형의 말을 듣고 나는 무슨 깡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주에 자퇴서를 냈다.

부모님께 자퇴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을때 나는 안좋은 반응을 예상했지만 정말 놀랍게도 바로 도장을 찍어주셨다. 부모님도 예상하셨던것 같다..



자퇴를 할때만 해도 정말 내 자신이 뿌듯하게만 느껴졌다. 주변사람들의 놀람도 있었고 내가 꿈을 향해 출사표를 던지는구나라는 다소 거만한 생각도 많이 했었던거 같다. 사실은 이때부터가 중요한 것이었는데 그걸 알아차리질 못했다.



처음 한달은 그저 재수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했다. 나도 성공후기의 주인공이 될수 있게 열심히 해보자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재수 초기니까 좀 쉬엄쉬엄하자는 마인드도 많았다.



두달째 되면서 6평을 보고 처참한 점수를 받았지만 아직 공부한지 한달밖에 안되었으니 그랬으리라 정당화를 하며 계속 공부를 했다



세달째는 내가 올해들어 가장 공부를 많이 했던 시기이다 도서관에 안 나간적이 없었고 매일 10시간 이상은 했던 때였다. 정말 올해는 성공할거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7월에 빡세게 해서 그런지 8월때는 전달만큼 효율을 내진 못했다. 이따금 공부가 되지 않아서 혼자 영화관도 가고 갑자기 친구불러서 한탄도 하고 그랬던게 많았다.



전달에 그렇게 공부했으니 9월에 잘될리가 없었다. 그냥 예상했던 대로의 성적이 나왔다. 국어는 쉬워서 그런지 처음으로 1등급을 받았지만 나머지는 그냥 뿌린대로 거둔 수준이었다. 공부량의 반을 수학에 쏟아부었지만 여전히 수학은 4등급이었다.



그리고 지금 10월, 작년 고3때는 이시기에 멘탈을 놓고 공부를 제대로 안했던게 후회되어 이번엔 제대로 하겠다고 결심했으나 사람이 어디 쉽게 변하나, 1주일째 도서관에 나가지 않고 있다. 마치 수능공부를 취미로 하는듯하다. 어떻게 하겠다는 목표의식도 잃어버리고 그냥 흘러가는대로 노는게 질리면 공부하고 이런식이다.



참 나도 뭐하나싶다.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



더이상 어중이떠중이로 살지 말아야겠다.

물론 지금까지 내가 해온 것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겠지만 남은 24일, 다시 마지막으로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치열한 기간을 살아보고 싶다. 다시 한번 수능을 보게 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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