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재수에 대하여
게시글 주소: https://a.orbi.kr/00071019362
7년간 우울증을 앓고 있고, 반수해서 25 수능 친 사람입니다.
혹여 제가 반수생활을 하며 느꼈던 것들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글 써봅니다.
(+수정
우울증을 달고 좋은 성적을 내는 법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라
우울증을 달고 견뎌내는 법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우선 제 이야기를 해 보자면
굉장히 강압적인 집안에서 살아왔습니다.
맞는 것보다 더 아팠던 것은 수없이 들어왔던 폭언이었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나가 죽으라, 너는 병신이다 라는 소리를 수없이 듣게 되니
언젠가부터 전 저를 나가 죽어야 할 사람, 사람 노릇도 못할 쓰레기로
그렇게 스스로 규정하고 있었고요.
어릴 때부터 이어진 자1살, 자1해 행위가 고쳐지질 않고
스트레스로 쓰러지기도 하고...
여튼 경증으로 생각될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제가 반수를 결심할 때 가장 고민했던 건
'이런 내가 반수 생활을 견뎌낼 수 있나?' 였습니다.
그냥 살아도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이 거지같은 병을 달고도
과연 내가 재수 생활에 충실하며 살아갈 수 있나,
재수의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나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했냐고요?
저는 반수를 시작하면서 딱 2가지 목표를 잡았습니다.
1. 성적상승
2. 나약한 나를 이겨내기
걸핏하면 죽음을 생각하던 저의 습관을 역으로 이용했습니다.
이 둘중에 하나라도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냥 죽겠다
사실 제 성적은 처참히 망했습니다.
최저만 바라보고 공부했던 작수와 비슷한 성적이 나와버렸으니까요.
다만 두번째 목표는 성공했습니다.
제가 해낸 모든 일들을 스스로 폄하하고, 스스로에게만 엄격하게 굴었던 제가
'그래도 이만하면 충분한 노력을 했다'라고 인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3, 14시간의 순공을 찍던 순수한 '공부에서의 노력' 도 있겠지만
평생을 남들에게 징징거리며 살다가 홀로 견디려 아등바등 애쓰고
완벽을 추구하던 제가 '쉼의 중요성' 을 느끼고 일주일 중 하루는 쉬겠다! 결정하며
인생 처음으로 제 스스로에게 '오늘 하루 잘했다' 고 토닥여주는 날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렇게 어느 순간
'어, 나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라고 느꼈습니다.
초반엔 하루치 공부를 끝내고 우는 데 시간을 쏟던 제가
제 내면적 성장에서 얻는 만족감을 원동력 삼아 공부에 집중했고,
참담한 결과를 보고도 꽤나 빨리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결국
제가 반수 초장에 잡은 목표가
'성적' 단 하나뿐이 아니었기 때문이겠죠.
약 6개월의 시간 동안
우느라 바쁘고, 걱정하느라 바쁘던 삶에서
공부 하나에 몰두하는 시간을 가지며
내가 이만큼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나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병신은 아니었구나....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7년 간의 아픔이 어느 정도 호전되었다고 느꼈을 때 찾아왔던 행복과
이렇게 서서히 나아갈 수 있겠다는 희망이
제 재수 생활을 견뎌내게 했던 가장 중요한 요소였으며
현재, 이 행복과 희망이 절 여전히 살아내게 만들고 있습니다.
말이 너무 길었네요.
결론적으로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1번의 목표도 중요하지만,
2번의 목표도 꼭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쉽진 않겠지만
성적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조금은 덜어놓고
이 재수, 혹은 반수의 시간은
내가 내면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시간이다고,
그렇게 목표를 잡고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결과론적으론 망한 케이스지만,
두 번째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기대를 재수생활의 원동력으로 삼고
그 집중한 과정을 근거로 스스로를 토닥이고, 칭찬하며 내면적으로 성장하기.
이 선순환이 반복된다면
어쩌면 여러분은 이런 방식으로 성공한 케이스를 만들어내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재수나 반수, 그걸 넘어 n수는 정말 쉽지 않은 시간입니다.
특히 우울증을 앓고 계시는 분들에겐 더더욱요.
지금까지 드린 말씀 또한 어쨌든 저 하나의 과정과 결과이니,
이렇게 해서 우울증을 달고도 재수 생활을 무사히 해낼 수 있을지는 장담 못하는 게 맞습니다.
그래도,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으로서
누군가에게는 이 글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별개로,
용기 내어 재수에 도전한 모든 분들에게 고생하셨다고,
또한 용기 내어 도전할 모든 분들께 응원한다고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수능 서논술형 도입도 충분히 가능은 할듯
-
놀랍게도 당시 물리는 잘못이 없었음...
-
8장밖에 안돼네….. 2학년때는 22장 만들어야겠음!!!!!
-
요즘에는 고기 한두개만 있어도 이름 붙임?
-
젤 의미없는 질문
-
안녕하세요. 소테리아의 길 입니다. 여유로운 주말입니다. 주말에는 문장 단위별 독해...
-
머 먹디 5
호레엥 배가 너무 우ㅏ파 머리도ㅠㅈㄴ게 아파
-
고1 10모때 6등급 떴고 사실상 중학 국어 이후로 특성화라서 국어 공부 비중이...
-
양심이있나?
-
둘 중 누굴 더 선호하나요? 잘 몰라서 그러는데 두분 강의 스타일도 알 수 있을까요?
-
서강대야 제발
-
너네 몇살이냐 10
어휴 유치한 넘들
-
분탕질한게엊그제같은데이젠쟤네랑경쟁해야할날이몇년안남았다는게너무충격
-
이거진짜에요? 6
ㅇㄱㅈㅉㅇㅇ?
-
민주, 여론조사 대응 기구 설치…"제도 개선 고민" 2
[서울=뉴시스]신재현 기자 = 더불어민주당은 20일 당내 기구 등을 설립해 여론조사...
-
아니 ㅅㅂ 무슨 4
원래 샐러드 포장할거 실수로 매장으로 눌러서 죄송하다고 사과했는데 알바가 ㅈㄴ...
-
라는 나쁜말은 ㄴㄴ
-
힘들게 한 사람 강냉이를
-
2028학년도 새 수능 통합사회·과학 각 25문항 40분씩 치른다 18
제2외국어·한문, 20문항 30분으로 축소…총시험시간 20분 늘어 사회·과학 배점...
-
[ 2025 지인선 N제(S1) 9회 15번 ] ㄹㅇ 씽크빅
-
이거 골라주라 이유도 같이 적어줘
-
반수 실패하면 어떻게해야함? 엇학기 되는건데 복학하면 한학기는 그냥 교양 위주로...
-
이틀 기다리고 갔는데 사람이 많아서 대기명단 써야하길래 그냥 나와서 편의점 핫바...
-
송재윤의 슬픈 중국: 변방의 중국몽 한반도 게임: 미중 전쟁과 코리안 딜레마 (3)...
-
자대가자마자 토일월화수목을 ㄷㄷㄷ
-
서울대1차붙고2차기다린도르 해야됨
-
이재명 "트럼프 취임 축하…미국 우선주의 대응책 준비해야" 1
(서울=뉴스1) 김경민 임세원 구진욱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일...
-
과외알바를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한 매뉴얼&팁입니다. 미리 하나 장만해두세요~~...
-
님들 분명 두달전만 해도 잘 있던 스테이플러가 어디로 간걸까요 혹시 아시는분 계시나요
-
연대 시벌 0
고연이다 이젠
-
리더쉽 관련한것만 세번 나와서 좋긴한데 관심분야, 직업, 동아리가 통일성...
-
정법vs세지 1
사탐런이면 뭐를 더 추천함..? 생지헀고 생명을 더 잘했음 아무래도 지리가 암기가...
-
고려대는 조기발표해라
-
일해라노
-
조발좀 하라고 아오
-
외대 조발해! 0
스탑더미발표!
-
김상훈 비문학 3
비문학도 괨차나요? 문학은 머 워낙 유명하시니 구조독해 느낌이라고 들었는데 그럼...
-
지방 메디컬인데 샘퍼랑 나머지랑 왤케차이남요? 26명중 14등임다
-
美 공군기 탑승하는 트럼프 일가…마중 나온 GV80 '씬스틸러' 7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식이...
-
악마소환 ㄷㄱㅈ
-
뀨뀨 12
뀨우
-
굿모닝 3
안녕
-
배점 꼬라지 ㅋㅋㅋㅋㅋ
-
얼버기이 21
-
오늘 점심은 샐러드 14
엄..
-
“대통령 시계 삽니다”…5만원에도 안 팔리더니 지금 얼마? 6
[서울경제] 12·3 계엄 이후 후 헐값이 됐던 윤석열 대통령 관련 기념품들 가격이...
-
쭈압쭈압
-
국민의힘 46.5%·민주 39.0%…정권 연장 48.6%·정권 교체 46.2%[리얼미터] 143
(서울=연합뉴스) 안채원 기자 = 국민의힘 지지도가 더불어민주당 지지도를 약 6개월...
고생하셨네요ㅠㅠ
강압적인 집안, 폭력, 욕설을 가족들한테 당했다는게 너무 가슴 아파요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시간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ㅋㅋㅋ 언젠가는 다 지나간 일이 되겠죠
긴 글인데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정성추
저도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둘 다 앓고 있어요..!! 너무 길어서 읽긴 불편하시겠지만 도움 되셨으면 좋겠네요
혹시 견뎌냄에 있어 외적인 도움도 받으셨을까요? 예로 정신과와 같은 그런...
약 부작용(메스꺼움과 특히 졸음..)이 고등학교 성적에 악영향을 끼쳤던 기억 때문에 반수 할 땐 아예 안 먹었습니다.
(고3 들어가기 전에 멋대로 단약해버렸습니다. 약 먹는 동안 신체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보통은 처음 약 먹고 1~2달 정도 지나면 부작용 괜찮아지니 드실거라면 본격적으로 재수 시작하기 전에 미리 먹으면서 적응하시는 거 추천드려요
저는 거의 모든 약의 부작용을 심하게 받는 희귀케이스라 이런 경우는 드물겁니다.
이외 상담같은 건 받아본 적 없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면 그만 둬야 합니다" 라고 말씀해주시면
"그게 됐으면 진작에 나았겠지...." 이런 식으로 생각해버려서....
모든 말을 삐딱하게 들어버리니까 스스로 생각을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별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