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킴의 인문논술 - 창의력에 대하여
게시글 주소: https://a.orbi.kr/00022714862
1.
인문 논술 시험에서 '창의력'을 찾으시는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답안에는 창의력이 있어야죠~"
"합격하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창의적인 답안~"
저는 이게 다 무슨 소리인지 당최 알 수가 없습니다.
2.
그래서 창의성은 아무런 필요가 없냐고요?
인문 논술에서의 창의성은 다른 겁니다.
멋진 문학 작품을 써내는 창의력이나, 아예 세상에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그러한 종류의 번쩍임이 아닙니다.
인문 논술 시험에서 보고자 하는 창의력은 '주어진 것 활용하는 능력' 입니다.
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발명 같은 게 아니라요!
이제부터 뭐가 인문논술에서 요구하는 창의력인지 똑똑히 보여드리곘습니다.
아래는 제가 이전에 올린 2018 연세대학교 사회 해설 입니다.
해설의 전체 파일은 아래 링크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제시문 (가)를 활용하여 제시문 (나)를 설명하는 부분만을 통해 창의성이 어떻게 사용되고, 드러나는지 살펴볼 겁니다.
3.
--------------
제시문 (가)
인과 관계는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를 말한다. 예를 들어 여름철에 오호츠크해 기단*과 북태평양 기단이 우리나라 상공에서 부딪힌 상태로 정체하면 장마가 시작된다. 즉 ‘두 기단의 충돌 및 정체’와 ‘장마’ 사이에 인과 관계가 성립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과 관계를 밝히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과 관계를 밝히면 어떤 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인과 관계를 가장 분명하게 입증하는 방식은 실험이다. 인과 관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원인이 되는 변수 이외의 요인에 의한 설명은 제거되어야 하는데, 실험은 이를 가장 분명하게 제거해 준다. 실험은 모든 면에서 유사한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집단을 나누고 특정 집단에만 어떤 변수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후 집단 간에 결과의 차이가 있는지 관찰한다. 그러나 사회 현상은 대부분 다양하고 복잡한 사건들이 얽혀서 나타나기 때문에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기 어렵고 실험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사회 현상은 자연 현상과 달리 역사적, 문화적 조건의 지배를 받으며 동기나 가치 등 사람들의 주관적 요인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사회적 맥락 속에서 개인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여 인간의 내적인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따라서 연구자가 연구 대상의 입장이 되어 현상을 이해하려는 감정 이입적 설명 방식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 감정 이입적 설명 방식은 인간 행위의 의미를 탐구할 수 있는 일기, 대화록, 관찰 일지, 면접 기록 등의 자료를 선호하며, 이를 통해 연구 대상을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연구자의 주관이 개입되어 연구가 객관성을 잃을 우려가 있으며, 또한 연구 결과를 일반화하거나 다른 상황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특정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데 인과적 설명 방식과 감정 이입적 설명 방식 중 어느 한 가지만을 배타적으로 고집할 필요는 없다. 최근에는 이 두 설명 방식의 장점을 살려 함께 사용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즉 한 가지 설명 방식을 견지하되 그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다른 설명 방식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다.
* 기단: 수백km2에 걸쳐 형성된 기온과 습도 등의 성질이 비슷한 공기 덩어리.
제시문 (나)
선거로 지도자를 선출하고 평가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율은 중요한 문제이다. 기존 연구는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하는 동기로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투표에 참여할 때 느끼는 만족감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 시민의 의무를 다하라는 사회적 압력이다. 만족감과 사회적 압력이 각각 투표율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기 위해, 총 120,000가구의 M지역 유권자를 대상으로 투표 독려 엽서를 이용한 연구를 수행했다. 이 지역에서 개인 유권자의 투표 여부가 공개된다는 점에 착안하였다.
만족감과 사회적 압력을 제외한 다른 요인들의 영향을 없애기 위해 A, B, C 세 집단을 40,000가구씩 무작위로 추출하여 구성하였다. 세 집단에 속한 유권자의 연령, 가족 수, 이전 선거 투표 여부는 차이가 거의 없었다. A 집단에는 엽서를 보내지 않았고, B 집단과 C 집단에는 투표 독려 문구를 담은 엽서를 발송했다. B 집단에 보낸 엽서에는 민주 시민으로서의 만족감을 강조하는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첫걸음입니다. 민주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합시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C 집단에는 “선거 후, 누가 투표에 참여했고 참여하지 않았는지 공개하는 엽서를 지역 주민에게 보낼 계획입니다. 누가 투표했는지 안했는지 당신과 이웃 모두 알게 될 것입니다.”라는 문구, 즉 사회적 압력의 메시지가 들어간 엽서를 보냈다.
선거가 끝난 후 A, B, C 세 집단의 투표율은 각각 29%, 31%, 38%로 조사되었다. C집단의 투표율이 A, B 집단에 비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과 이웃의 투표 여부가 공개된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투표율이 증가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문제 1〉 제시문 (가)의 두 가지 설명 방식이 제시문 (나)와 제시문 (다)에 각각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분석하고, 각 제시문에 드러난 설명 방식의 장단점을 평가하시오. (1,000자 안팎, 50점)
--------------
문항 풀이
이제 이 문항에서 '창의성'이라는 게 어떻게 드러나는지 보여드릴 차례입니다.
창의성이라는 건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와 관련된 말입니다.
새로운 걸 요구하는 게 전혀 아닙니다.
----
먼저, 제시문 (가)의 인과적 설명 방식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현상을 설명하거나 예측하기 위해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밝힘
제시문 (나)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진행합니다.
만족감, 사회적 압력이 투표율에 끼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연구
이제 이 둘 사이를 연결하는 것이 창의력입니다.
그냥 1:1 대응으로 연결될 지점들을 찾아서 보여주는 게 창의성, 문제 해결 능력이라는 겁니다.
만족감, 사회적 압력(=원인)이 투표율에 끼치는 영향(=결과)을 알아보기 위해 연구
여기에 연구를 왜 하느냐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투표율 = 현상
이 되는 것이고, 최종적으로 다음처럼 정리가 됩니다.
'투표율'이라는 현상에 대해 알려고 ‘만족감, 사회적 압력’이라는 원인과 '투표율에 끼치는 영향’이라는 결과 사이의 관계를 밝힘
이 정도가 논술에서 요구하는 창의성입니다.
나머지 부분들도 다 이렇게 정리하면 됩니다.
전체적인 해설은 위에 제가 방금 올린 해설 링크의 파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4.
너무 별 거 없다고요?
네, 정말 이 정도가 다입니다.
저런 대응이 무슨 창의력이냐고요?
사실 논술이 요구하는 창의력은 저 정도 수준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절대로, 제시문과 무관한, 아예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라 하지 않습니다.
5.
인문 논술이라는 시험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재료를 줄테니까, 이거 가지고 이런 요리를 해봐'
대학 측에서는 제시문이라는 재료를 줍니다.
여러분들은 그 재료를 손질하고, 다듬어서 논제의 요구 사항 이라는 요리에 맞는 결과물을 냅니다.
그 결과물의 완성도에 따라서 여러분들은 평가 받습니다.
완성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근거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것과 어떤 것이 연결된다고 하면, 그것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상세하게 보여주는 것이 완성도의 차이를 만듭니다.
이런 근거를 여러분들의 상상이나 배경지식으로 뽑아내는 게 아니라,
오로지 제시문의 내용만을 활용하여 그곳에 집어 넣는 게 창의력이라는 겁니다.
6.
만약 여러분들이 논술 문제를 풀이하려는 방향성이 새로운 걸 집어 넣으려고 안간힘 쓰는 것이라면,
본인의 논술 공부 방향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은 여러분들의 독해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보자는 것이지,
아예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창조해내는 능력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2019년의 칼럼과 자료
1. https://orbi.kr/00020624013
코드킴의 인문논술 칼럼 - 1, 대입 인문 논술을 대하는 태도와 오해
2. https://orbi.kr/00020626346
코드킴의 인문논술 칼럼 - 2, 인문 논술 공부법에 대하여
3. https://orbi.kr/00020998207
코드킴의 인문논술 칼럼 - 3, 반대 추론의 결점에 대하여
4. https://orbi.kr/00021045226
코드킴의 인문논술 칼럼 - 4, 비교 논제의 풀이 방법
5. https://orbi.kr/00021124225
코드킴의 인문논술 칼럼 - 5, 2014 연세대 인문 해설
6. https://orbi.kr/00021200092
코드킴의 인문논술 자료 - 성균관대 교재
7. https://orbi.kr/00021202973
코드킴의 인문논술 자료 - 한양대 해설 모음
8. https://i.orbi.kr/00021439115
코드킴의 인문논술 해설 활용법
9. https://orbi.kr/00021752296
코드킴의 인문논술 자료 - 2018 연세대 인문 해설(수정)/2018 연세대 사회 해설
10. https://orbi.kr/00021887704
코드킴의 인문논술 자료 - 2012 연세대 인문 해설(수정)
11. https://orbi.kr/00022499389
인문 논술 노베에 대한 저의 생각
12. https://orbi.kr/00022673321
코드킴의 인문논술 자료 - 2015 연세대학교 사회 2번문제 해설
0 XDK (+1,000)
-
1,000
-
만백이 96인데 48백이 95나오는게 어떻게 가능한거지? 만백96이면 만점자가...
-
쉬러가야지
-
논술로 건동홍이상붙은 인문계 / 전공 공부 빡세게햤던 자연계는 써봐도 괜찮을듯
-
1일1식 ㄹㅇ 좋음뇨 과식해도 살이 빠짐
-
좋을 텐데 시뮬레이션 가설에 따르면 우리는 시뮬레이션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어떻게...
-
2배입ㄴ트를 어케 참는데 ㅋㅋ
-
ㅈㄱㄴ
-
면접에서 등록금 2
지거국이라서 약대 등록금 싸서 좋다고 얘기하면 감점임? 탐탁치 않아 보이던데......
-
연세대 수리논술 가장 깔끔한 해결방안은 - https://orbi.kr/00069464896
-
딱 그날 일본 간다고 야발 비행기도 취소하면 돈 내야된다고 연치 어차피 안 될거 걍...
-
저렇게 증원해도 되나 정원 외를 줄이려나
-
인생은 한번 뿐인데 그냥 할래
-
학교생활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한 번쯤 가보는 거 아니었음?? (진짜 모름)
-
엥간하면 아닌거니까 1. 포기하고 다른길 추구 2.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걸 인지하고 목표 추구
-
경북대 정시 0
경북대 정시 낮은과라도 가능한가요?
-
우웅..
-
이 있을까요
-
작년에 비해 국어 수학 만표가 낮으면 그에 맞춰 탐구변표 만표도 낮아지나요? 예를...
-
오지훈T : 6, 9월보다 조금 더 어려운 정도 박선T : 상당히 어려운 수능,...
-
탐구 무슨 조합으로 가시나요
-
가천대 e형 0
가천대 e형 지수 문제중 모든 k값합 저만 1960나왔나요…
-
Half 복귀 기념 21
작년에 있었던 오르비언들 중에서 내가 기억나는 사람들에게 선착순 10명 5천 덕코...
-
저는 현재 06이고 재수 예정입니다 목표가 서성한위라 가산점을 무시하기가 힘들어서...
-
신난다!
-
정시 서성한/중경정도 지원예정인데~~ 상위권 230명 빠져나가는거니 좋은 소식일지......
-
1러 2척 3
-
물리 동아리 세특 쓰려고 하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함수 생성기를 이용하여 다양한...
-
변표랑 가산점 고려하면 어디까지 가눙할까요…
-
ㅈㄱㄴ 내 성적 아님
-
진도 0
하루에 국영수경(제)국사 강의 한 과목당 2개만 들을 수 있는데 한 과목만 굵직하게...
-
아니 부정행위가 문제인데 부정행위자를 그대로 보내주겠다는거는 ㅅㅂㅋㅋㅋㅋ "걍...
-
밐2 1
-
편입에서 어케 빼온다는거임
-
선생님..?
-
지들이 달아달라고 ㅈㄹ하던 cctv 달아줬더니 이젠 막고있네ㅋㅋㅋ 학교 가면...
-
먼저 본 거 합격자 그대로 뽑고, 2차에서 같은 인원 수만큼 또 뽑음
-
쎈이랑 병행할 수학 문제집 추천 부탁드립니다!
-
실제 길이인 거 이거 증명 어케해요?? 그냥 기계적으로 쓰고 있었는데 증명하라니까...
-
일처리 빨리도 한다... 안녕하십니까. 올해 10월 12일 시행된 2025학년도...
-
자연계열 정원이 261명임 ㅜㅜ
-
바람소리가 너무 무서운데
-
가장 반발 적을듯
-
역시 클럽에서 과잠플러팅은 경평 ㅋㅋㅋㅋㅋ
-
안녕하세여 지방 한의대만 목표로 하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미적분은 지금 현재...
-
치뱃카뱃이예뻐보이네 13
내놔
-
오르비 눈팅 3
지금 면접 준비하러 학원에 자습하러 왔는데 오르비 눈팅이나 하고 앉아있네 참 나도 ㅎㅎ
-
연논 재시험 0
https://www.chosun.com/national/education/2024/...
존경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