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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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저는 사고력이란 무엇인가 시리즈에서, '천재에게 과외받지 마십시오'라는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몇몇 댓글이 달렸는데, 확실히 직접 과외를 하다보니 어린 학생들이 대체 왜 이걸 못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해주더군요.
많은 학부모님들께서는 자기 자녀에게 의대생이나 명문 공대생들에게 수학 과외를 시키면 무조건 잘 가르치고, 성적이 쑥쑥 올라갈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본인이 직접 공부를 잘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러한 편견을 가지는 것입니다.
잘 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매우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대학교만 가도 알 수 있습니다. 요새 교수 되는거 끔찍하게 어렵습니다. 좋은 논문도 출판을 해야 하고, 뛰어난 아이디어를 남들보다 많이 내서 빨리 논문을 집필해서 내야합니다. 일반적으로 교수들은 대체로 해당 분야를 잘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모두 강의력이 뛰어난가요? 아닙니다. 우리가 유튜브나 방송에서 유명한 교수들의 강의를 듣다 보니까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방송에서 나와서 대중들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정도가 되려면 엄청나게 잘 해야 합니다.
정확히 뭘 잘해야 하냐면, '번역'을 잘 해야 합니다. 교수님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편하게 영어 용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도 있고, 한국어이긴 한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단어를 자주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분야를 전공하거나 공부하는 사람들만 쉽게 이해하는 용어들이죠. 이를 일반인에게도 이해할 수 있게, 일반 세상에서 쓰이는 적절한 난이도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잘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해서 잘 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체로 대중성이 매우 뛰어난 인기 강사들이나 유튜브에서 활약하는 사람들은, 전문성에서 많이 밀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료를 찾아왔는데 잘못 인용하는 경우도 있고, 당당하게 틀린 내용을 설명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경우에는 해당 분야를 깊이 공부한 다른 학자들에게 지적당하기 일쑤입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자주 범하는 오류가 바로 625 전쟁 당시 중공군이 꽹가리랑 피리로 무장하고, 막무가내 물량으로 밀고 내려왔다는 설명입니다. 이전 전쟁사 칼럼에서 소개하였듯이, 중공군은 여러 전쟁으로 잔뼈가 굵은 전문가 집단이었고, 뛰어난 기동력을 바탕으로 여러 전투에서 대군의 우위를 점하였습니다. 제공권과 제해권이 UN군에게 넘어간 상태에서 막무가내로 물량으로 밀어붙이면 강한 화력에 녹아버립니다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1/24/2015012400558.html
잘 하는 것, 그러니까 머리가 좋은 것은 선천적인 요소가 지배적입니다. 그냥 천부적으로 IQ가 높고 머리 회전 속도가 빨라서, 뭔가 문제가 주어졌을 때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것에 특화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자동차에 엔진 자체가 좋은 성능으로 출고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근데 잘 가르치는 것은, 잘 하는 것에 + @이어야 하는데, 제가 나름 생각을 해보고 관찰을 해보니 '관찰력'이 상당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대체로 청중과 소통을 하는 강사의 경우 눈치가 굉장히 빠릅니다. 무슨 말을 했는데 청중 표정이 안 좋다고 느껴지면 바로 다른 대안을 제시합니다. 많은 사람들과 자주 이야기를 하는 대형 강사들은 청중과 소통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청중을 잘 관찰한다는 것이죠.
또한 공감 능력도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뇌공학 기술의 발전이 충분하지 않아서, 직접 상대방의 뇌 속으로 들어갈 순 없지만, 뛰어난 상상력과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어떤 학생이 답답하게 뭔가를 자꾸 못하면, 그걸 보고 그 학생의 입장을 상상해보는 것입니다.
관찰을 통해서 그 학생이 어디서 자꾸 틀리고 어떤 오류를 범하는지를 찾아내고, 그것 역추적해서 잘못된 알고리즘을 찾아내고 그걸 정확히 교정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 학생의 생각하는 과정, 사고 과정을 알아내고 잘못을 정확하게 인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체로 강의력이 좋은 교수님들의 경우, 자신의 사고 과정을 매우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전달하여 학생으로 하여금 그 사고 과정만 따라가도 충분히 문제가 풀릴 수 있게 유도합니다.
수학 천재들의 경우 문제를 풀 때 A ->B -> C -> D -> E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냥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서 A -> C- > E로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재들이 푼 과정을 그냥 그대로 따라가다보면 뭔가 논리가 막히고, 그 다음 과정을 어떻게 고안을 하였는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그래서 천재 수학자들이 아주 좋은 논문을 제출해도, 심사 위원들이 그 사고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질 못해서 몇 개월에 걸쳐서 논문을 해석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잘 하는 사람은, A -> C -> E의 과정을 거쳤다고 할지라도, 남들에게 쉽게 설명을 할 때는 일부러 살을 붙여서 A -> B -> C -> D -> E를 세세하게 그 과정을 유도하고 서술하는 것입니다. 만약 가르치는 학생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워 한다면, 그 사이사이에 더 세세한 살을 붙여서 길게 서술해야 하는 것이죠.
저도 <수국비>에서는 굉장히 세세하게, 어떤 생각을 하였으며 해당 문장을 읽고 어떻게 주제로 접근을 하였는지 아주 세세하게 적어놨습니다. 그런데 정작 제가 시험장에서 문제를 풀 때는 그렇게 세세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말 단순해지고, 속도를 위해서 뜀틀 하듯이 과정을 일부 생략합니다. 그렇게 생략을 할 수 있게 된 원리가, 아주 기초적으로 차근차근 과정을 밟는 연습을 했기 때문입니다.
생물학적으로 비유를 하자면 바이러스를 들 수가 있겠습니다. 바이러스는 굉장히 단순한 구조를 가졌기에, 얼핏 보면 바이러스가 굉장히 오랜 생물의 조상이 아닐까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좀 오래되서 정확히 기억은 나질 않지만) 여러 요인들을 살펴보았을 때, 바이러스는 구조적으로 단순하기는 하지만 우리의 조상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더 안정적이고 복잡한 생명체가 있었는데, 바이러스는 거기서 더 단순화된, 후손이라는 것이죠.
최초의 생명체가 있었다면 다양한 물질을 합성하는 물질 대사를 통해서 생명을 이어나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오로지 생명체에 기생하는 형태로만 자기 복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최초의 생명체에서, 오히려 일부 기능들이 탈락하고 더욱 단순화 된 것이 바이러스라는 것이죠.
제 마지막 칼럼에서 '알고리즘의 통합과 단순화'가 떠오르질 않습니까? 오히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알고리즘은 효율적으로, 더 단순하게 변합니다. 무조건 복잡한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생명체의 궁극적인 목적은 '생존과 번영'으로 설명이 됩니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천연두 바이러스를 제외하면 모두 계속해서 변형과 진화를 통해서 인류와 경쟁하고 있죠.
반면 인간은 다양한 기관으로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으며 주요 기관에 총알이 꿰뚫어버리면 사망에 이릅니다. 현대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이긴 하지만 먹이사슬 밑에 존재하는 생명체가 멸종하면 같이 사라질 수 밖에 없는 불안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공부할 때만 하더라도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냥 흔한 감기 정도의 바이러스로 배웠었다고 합니다. 그런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통해서, 인류의 대량 유통망, 항공망을 통해서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게 되었죠
https://www.novartis.com/kr-ko/covid-19
제가 요새 글을 굉장히 길게 쓰고 설명을 세세하게 쓰는 버릇이 생겼는데, 물론 저도 마음만 먹으면 마치 문학처럼 굉장히 함축적으로 여러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는 단어를 통해서 짧게 요약을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여러분이 나중에 직장을 가지게 된다면 요약 정리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해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짧게 쓰기 보다는 길게 쓰느냐?
짧게 쓰면 효율적이긴 하지만 왜곡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사고 과정을 서술하면서도, 곁가지처럼 다양한 예시를 일부러 동원하여 살을 붙임으로써 제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를 하길 바라는 의도에서 매우 길게 서술하는 것입니다.
사실 글을 길게 쓰는 것은 그닥 어렵지도 않습니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중언부언 더 붙이면 되거든요. 오히려 글은 짧게 핵심을 요약해서,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비슷하게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도, 쓸데없이 길게 적는 것도 쉽습니다. 오히려 어려운 것은, 그것을 최적화하고 더 짧은 시간 안에 더 정확하게 푸는 요약 정리를 하는 것입니다.
저도 고등학생 때까지도, 무조건 글은 긴게 좋은 것이고, 답변은 세세하고 상세한 것이 친절한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물론 길게 쓰려고 하면 일단 타이핑을 오랫동안 해야 하니까 시간은 많이 걸리죠. 그런데 그런 긴 글을 다듬어서 짧게 효율적으로 정리하면서도, 원본의 의미를 잃지 않게 조절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고 뛰어난 테크닉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생각을 하고 문제를 풀때 가지치기를 좀 잘 하면 좋겠습니다. 저 같은 가르치는 입장에서야 여러분이 어떻게든 이해를 하게끔 만들어야 하니까 말이 길어지는 것이지만, 실제로 저나 선생님들이나 문제를 제한시간 안에 풀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굉장히 빨리 풀 것입니다. 효율적으로 알고리즘을 세워야지 실수도 적어지고 소요 시간도 짧아집니다.
게다가 전 체력도 많이 부족했거든요. 그래서 그걸 깨달은 이후에는, 영어처럼 제가 정말 잘하는 과목은 더더욱 짧고 간단하게, 적은 정신력을 동원해서 1등급을 맞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체력도 시간도 정신력도 모두 한정된 자원이라는 생각을 염두에 두시고, 효율적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집중하길 바랍니다.
<수국비 상>
https://docs.orbi.kr/docs/7325/
<수국비 하>
https://docs.orbi.kr/docs/7327/
알고리즘 학습법
https://orbi.kr/00019632421 - 1편 점검하기
https://orbi.kr/00054952399 - 2편 유형별 학습
https://orbi.kr/00055044113 - 3편 시간차 훈련
https://orbi.kr/00055113906 - 4편 요약과 마무리
사고력이란 무엇인가
https://orbi.kr/00056551816 - 1편 바둑과 수싸움
https://orbi.kr/00056735841 - 2편 예절
https://orbi.kr/00056781109 - 3편 자유로운 직업세계
https://orbi.kr/00056882015 - 4편 따라하기
https://orbi.kr/00057164650 - 5편 어린 놈들이 약아서
https://orbi.kr/00057384472 - 6편 자기 스스로를 알아차리기
https://orbi.kr/00057614203 - 7편 체력분배
https://orbi.kr/00057650663 - 8편 수학적 상상력
https://orbi.kr/00057786940 - 9편 편견깨기
https://orbi.kr/00058147642 - 10편 시냅스, 알고리즘의 강화
https://orbi.kr/00060975821 - 11편 자문자답
https://orbi.kr/00061702648 - 12편 '박영진 이혼전문변호사'를 통해 재밌게 알아보는 법률 이야기
https://orbi.kr/00062050418 - 13편 수능 국어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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