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나무 [1187265] · MS 2022 (수정됨) · 쪽지

2024-11-07 21: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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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윤 그리고 고2 짝사랑 그녀_외전_선생님의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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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 겨울, 그날은 유난히 추웠다.



기말고사 문제지를 들고

교무실로 향하는 네 뒷모습을 지켜보았어.


"선생님, 이 부분이 평가원 기출과 다릅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시작된 네 말은

교무실 밖으로 새어나왔어.


     "그래서 뭐? 내가 채점한 대로 틀린 거야. 평가원이 맞고 내가 틀리다는 거야?" 

     "다른 반 애들은 다 맞았는데, 너만 이러는 이유가 뭐지?"

     "너 학생이 선생님 가르침을 의심하는 거야? 이런 태도, 생기부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거 알지?" 

     "이런 식으로 나오면 너한테도 좋지 않을 텐데..."


선생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교무실에 울렸어. 

차가운 겨울 공기보다 더 싸늘한 그 말투에 다른 선생님들의 시선도 이쪽으로 쏠렸지.

순간 교무실이 얼어붙는 것 같았어. 


평소 온화하기만 하던 선생님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모두가 놀란 듯했어. 

생기부라는 날선 카드를 꺼내드는 순간, 주변의 눈길은 동정과 걱정으로 바뀌었지.


하지만 네가 꺼낸 평가원 자료들은 그 차가운 협박 속에서도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속삭이고 있었어.


"선생님, 제가 제출한 증거 자료들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2015학년도 9평에서는 이렇게 나왔고, 2020학년도 수능에서도 똑같은 개념이 이렇게 출제됐어요. 롤스의 원전을 보시면..."


작은 목소리였지만, 흔들림 없이 차분하게 설명하는 네 모습. 

교무실 책상 위에 놓인 『정의론』과 『만민법』 형광펜으로 밑줄 그어진 부분들을 한장 한장 넘기며 보여주던 그 순간.


"그리고 선생님, 이건 단순히 제 점수의 문제가 아니에요.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위해서라도 정확한 개념으로 가르쳐주셨으면 해서..."


떨리는 손으로 자료를 정리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말을 이어가는 너를 보며 

나는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배웠어.


네가 읽었던 책들.

롤스의 『정의론』,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

그리고 수많은 평가원 기출문제들.

그동안 공부해온 수많은 증거들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자랑스러웠어.





소문은 금방 퍼졌지.

"그녀가 선생님한테 오개념이라고 했대..."

하나둘 모여든 다른 반 애들.

"나도 그 부분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문제 풀 때 의문이 들었는데..."

작은 속삭임들이 교실의 구석자리를 채우기 시작했어.


추운 겨울, 교실은 따뜻했어.

우리는 서로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지.


시험지에서 각자 발견한 오개념들,

말하지 못했던 의문들,

그리고 그녀의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사실 무서웠어..."

네가 조용히 말했어.


"근데 하버마스의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어.

진실을 말하는 게 옳다고.

우리의 학습권이 중요하다고..."


창밖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어.


하얀 눈처럼 순수한 네 마음이

이렇게 우리를 하나로 모았던 거야.


"이제 혼자가 아니야"

누군가가 말했어.



나는 책상에서 일어나 그녀 앞으로 걸어갔어.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말했지. 


"우리가 함께할게. 

이제는 네가 혼자 떨지 않아도 돼.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던 진실이니까...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우리의 목소리를 이제는 함께 내자"


내 목소리에 힘이 실렸어. 

그제야 그녀의 눈가에 살짝 맺혔던 눈물이 보였어.

있는 힘껏 용기를 냈지만, 그녀도 무서웠던 거야...


 

지금도 가끔 그날이 생각나.

추운 겨울날, 따뜻한 교실에서


진실을 위해 떨리는 목소리를 낸 너의 용기.

그리고 그 용기가 만든 작은 기적들.


청춘이란 게 다 그런 거겠지...

때론 두렵고, 때론 떨리지만

진실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순간들.

네가 보여준 그 용기가, 우리의 청춘을 더 빛나게 했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구나.

지금 나는 대학에서 너를 생각하며 공부하고 있어.


그때 네가 들려준 이야기들이 

지금 이렇게 오르비에서 울려 퍼지고 있어, 참 신기해.


간혹 오르비에서 롤스니 하버마스니, 

너가 읽곤 했던 사상가들의 이름을 읽을 때면,


그날의 네 모습이 선명히 떠올라. 

떨리는 목소리로도 진실을 말하던 너, 

작은 몸짓으로 세상을 바꾸려 했던 너. 



너를 정말 많이 사랑했었나 봐. 

지금도 메가커피 앞을 지날 때면 그때의 설렘이 고스란히 되살아나. 

네가 읽던 책들의 제목을 하나하나 기억하는 것도, 형광펜으로 밑줄 그었던 문장들을 아직도 외우고 있는 것도.


가끔은 궁금해. 넌 어느 대학에서 무슨 공부를 하고 있을까? 여전히 그렇게 용기있게 살고 있을까? 

그 시절처럼 철학책을 읽고 있을까?


많이 보고 싶다... 교무실 앞에서 떨리던 네 뒷모습도, 도서관에서 책 읽던 옆모습도, 첫눈이 내리던 날 내 눈을 바라보며 웃던 네 미소도.


우리의 청춘은 그렇게 빛났지. 진실과 정의,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반짝이던 그 시절.

네가 있어 참 다행이야. 그 추웠던 겨울이, 내 인생에서 가장 따뜻했던 이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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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생윤 그리고 고2 짝사랑 그녀'를 사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과 응원 덕분에 작은 메가커피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이렇게 많은 분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었네요.


처음에는 단순히 제 기억 속 그녀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철학책을 좋아하던 그녀, 정의롭고 용기있던 그녀, 그리고 제가 몰래 품었던 짝사랑까지...


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깨달았습니다. 이건 단순한 첫사랑 이야기가 아니었더라구요. 

진실을 향한 청춘의 순수한 열정, 불의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도 맞섰던 용기, 그리고 서로를 지지하며 자라났던 우리의 이야기였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교실 창가에 앉아 철학책을 읽는 학생이 있다면, 메가커피 구석자리에서 공부하는 수험생이 있다면, 그들의 꿈과 열정이 계속 반짝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녀에게도 이 글이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녀에게, 네가 보여준 용기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되고 있다고 전하고 싶네요.


다시 한 번 이 이야기를 사랑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청춘이 이렇게 다시 한 번 빛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백양나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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